Browse By

광고문의

[그들의 세계路]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③ – 정승재

#1. 나 그냥 집에 갈래

긴 비행에 지친 탓인지 긴장이 풀린 탓인지, 제집인 것 마냥 간밤에 생각할 틈도 없이 곯아 떨어졌다. 전날 밤 알람 맞출 겨를도 없이 잠드는 바람에 창문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눈을 떴다.

눈이 부신 것도 잠시, 창 밖을 내다보니 어제 밤에는 보이지 않았던 집 앞 전경이 펼쳐졌다.

<트레일 엔젤 ‘JUDY’의 집 테라스 풍경>

테라스 사이로 나무들과 나뭇가지 사이를 총총거리며 뛰어 놀며 지저귀는 새들의 아침을 보고 있자니 휴일 아침에 늦잠을 자고 일어난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해주었다. 그래도 혹시나 너무 늦게 일어난 것은 아닌지 시계를 확인 해보니 아침 8시가 다되어 갔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오는 것을 보니 JUDY는 이미 일어나 있는 모양인 듯 했다. 슬슬 일어나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침대에서 몸을 이리저리 뒹굴 거리며 스트레칭을 하고선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갔다.

거실로 나가자 진한 커피향이 물씬 풍겨왔고 먼저 일어나 있는 JUDY는 주방에서 아침 준비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JUDY와 커피를 마시고 있는 JUDY 남편에게 ‘Good morning’을 외치며 인사를 건냈다. JUDY와 JUDY 남편도 활짝 웃는 얼굴로 ‘Good morning’을 외치며 간밤에 잠은 잘잤냐고 물어왔다. 곧장 내 집처럼 정말 편안하게 잠을 잤다고 말을 하며, 고맙다고 말을 했다.

<맛있는 머핀으로 아침식사를!>

JUDY가 미리 준비해놓은 커피와 머핀, 그리고 베이글을 먹으며 어제 밤에는 보지 못한 집 내부를 둘러보니 깔끔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의 분위기였다.

커피를 마시고 있던 JUDY가 장난기 섞인 어투로 내게 질문을 했다.

“정말, PCT를 출발 할 준비가 다된 것 같아? 다시 한번 생각해봐, 늦지 않았어.”

머핀을 한입 물며 나도 장난스러운 어투로 답을 했다.

“아니,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아. 나 집으로 다시 돌아갈래.”

그러자 JUDY가 웃으며 말했다.

“이미 늦었어, 이제부터 고생 시작이야.”

그렇게 우리는 웃음이 가득한 아침을 맞이했다.

#2. 고마웠어요 JUDY.

일단 PCT 출발 지점에 가기 전에 우체국과 휴대폰 개통을 위해 유심을 사러 가야 했다.

우체국에서는 곰통과 여분의 신발, 그리고 잡다한 개인적인 물건들이 시에라 구간 전에는 필요가 없었기에 인근 마을로 택배를 보내버릴 예정이었고, 유심 같은 경우는 혹시나 있을 위험에 대비해 미국 번호를 개통하기 위함이었다.

JUDY와 함께 개인적인 용무를 다보고 나서 PCT 출발지점인 CAMPO에 도착을 하니 어느덧 오후 1시가 되었다.

언덕위로 보이는 출발지 비석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비석 가까이로 가보니 로그북이 놓여져 있었고, 이미 출발한 하이커들을 이름과 날짜가 상세히 기록 되어 있었다.

<자신의 이름과 출발일시를 적는 로그북>

나도 로그북에 2017.05.25 Rabbit 이라는 별명과 함께 이름을 적고서 PCT의 출발을 알렸다.

끝내 JUDY와 작별할 시간이 다가왔다.

공항에서부터 집 초대까지 더불어 CAMPO까지 데려다 준 JUDY에게 재차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내심 헤어진다고 하니 아쉬움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JUDY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JUDY의 모습이 작은 점이 되어 차를 타고 떠난 후 낯선 땅 위에 혼자 우두커니 서있자니 PCT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JUDY의 뒷모습>

사람과의 만남 뒤에 남겨지는 ‘헤어짐’이라는 단어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는걸 다시 한번 되새기는 순간 이었다.

#3. 2,647 마일, 이거 실화냐?

출발지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트레일을 따라 첫 발을 내딛었다.

<2,647마일…난 이 거리를 다 걸을 수 있을까?>

내리쬐는 태양볕 아래 금세 땀이 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1마일이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1마일 표지판과 함께 인증샷을 찍고선 발걸음을 이어갔다. 1시간쯤 걸었을까, 철길 사이에 커다란 표지판에 정확히 캐나다 국경까지 2,467마일이라고 적혀있었다.

그 순간, ‘정말 이 거리를 다 걷긴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마치 군대에 입대해 전역하는 날만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런 시간들 말이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보통 PCT 하이커들은 CAMPO에서 오전에 출발을 하기 때문에 25일 출발 하이커 중에서는 내가 제일 늦게 출발한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하이커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그런데 저녁 6시가 다되어 갈 무렵, 내 앞에 사람이 보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쫓아가 인사를 했다. PCT에서 처음 만나는 하이커였기에 더욱 더 반가웠다.

그녀는 말레이시아에서 온 하이커였고, 장거리 트레일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녀는 첫날이라 무리를 하고 싶지 않다며, 근처에 텐트를 칠 예정이라고 말을 했다. 나는 조금 더 운행을 할 생각이었기에 그녀에게 인사를 하며 ‘다음에 보자!’ 라는 말만 남긴 채 다시 길을 떠났다.

아마 그 때 떠나면서 그녀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는 날이 아닐까 지레 짐작을 했었는데, 먼 훗날 다시 보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첫날 목표인 Lake Morena까지는 정확히 20마일이었다.

<트레일에 노을이 내려앉는다. 마음이 급하다.>

늦게 출발 한 탓에 20마일 지점인 Lake Morena까지 갈려면 야간운행을 해야했다. 날은 금방 어두워졌고 나는 밤길을 대비해 미리 준비해놓은 헤드랜턴을 끼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걷고 또 걷고, 야간 산행까지 포함해무려 9시간을 걸려 밤 10시가 다되어서야 Lake Morena에 도착을 했다.

텐트 사이트에는 이미 다른 하이커들이 일찍 도착해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하이커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첫 날부터 무리를 해서 운행을 해서일까 그냥 빨리 텐트에서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른 하이커와 간단한 인사를 하고서는 텐트 안으로 들어와 침낭에 드러누워 버렸다.

‘내일은 다른 하이커들과 이야기를 나눠야지’ 라는 생각과 동시에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트레일에서의 본격적인 하루가 지나갔다.

 

SNS

Facebook – https://www. Facebook.com/travelvirus/

Insta – https://www.instagram.com/travelvirus/

Songdyli16@gmail.com

글/사진_정승재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