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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당신의 바다는 어디에 있나요? – 김은선

당신의 바다는 어디에 있나요?

<내 첫 번째 바다는 참으로 검푸르고 넓었다.>

내게 첫 바다는 어릴 적 10시간씩 고향을 찾는 이들의 귀향길에 자고 깨기를 반복하며 늦은 밤 도착한 검푸른 동해바다였다.

아버지 고향이 영덕이기에 설이면 민족대이동의 물결 속에 함께해야 했고 고향이 그리운 아버지가 주차장 같은 고속도로를 어찌 달리는지도 모른채 뒷좌석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졸음을 참으려 연 창문을 속도 모르고 닫아달라 보채다 보면 어느 새 왁자지껄 큰집에 도착했다. 서울서 온 막내 대접해준다고 온 집안 불은 다 켜놓고 온 동네 사람은 다 모인 듯한 어수선함이란…

집 앞이 바다였으니 문 밖으로도 늦은 밤 칠흙 같은 어둠 속에 검푸른 바다인지 땅인지 구분도 가지 않는 광활함 위로 달빛에 어른거리는 일렁임만이 느껴졌다.

일렁일렁 움직이는 땅처럼 그저 무섭게, 그렇게 다가온 추운 겨울 바다가 내 아버지 고향의
앞마당이었다. 아침이 되면 찬란한 햇살이 바다 위로 부서지며 그 넓디 넓은 진파랑으로 나를 마주했던 내 어릴 적 파란 바다.

그리고 두번째 바다.

<바다라는 무대에서 사랑을 꿈 꾸던 그 때의 나>

난 처음 타보는 기차를 수학여행의 단체여행 따위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시절 전국민이 다 가본 경주와 불국사를 난 30살이 되어서야 홀로 자전거 여행으로 갔다. 물론 엄청 좋았지만.

그렇게 간직한 내 고지식함의 내면엔 남자친구와 함께 떠나는 첫 기차바다여행의 꿈이 숨어있었다.

하지만 난 20살이 되어서도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만날 수 없었고 결국 모래시계 드라마 열풍에 못 이겨 수학여행도 함께 못갔었다고 성화인 고등학교 친구들과 정동진행 밤기차를 탈 수 밖에 없었다.

청량리에서 떠나는 마지막 열차를 타고 쉴새 없이 수다를 떨며 밤을 새고, 정동진 바다 모래사장에 앉아 장엄한 해돋이를 보자며 비장하게 눈짓하던 우리는 어느새 머리를 기대고 잠들어 버렸다.

게다가 기차 도착시간보다 먼저 떠버린 해에 씁쓸히 역에서 나와 모래시계의 ‘최민수 소나무’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있었다. 아~ 낭만은 어디로 간 것인지.

모래시계 열풍으로 무지막지하게 밀려오던 그 사람들의 행렬, 그 바다는 참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나의 세번째 바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제주도 푸른밤. 떠나간 아쉬운 인연의 마지막 미련을 던져 버리고자 제주도로 달려갔던 나의 바다. 오롯이 혼자가 되고 싶어 찾은 제주는 내게 여행의 또 다른 진수를 느낄 수 있게 해줬다.

<그 바다가 얼마나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지 나는 몰랐었다.>

언제나 내게 열려있는 제주의 품은 마치 보물상자처럼 걸어도 걸어도 지루하지 않은 다른 풍경으로 나를 감동시켰다.

17-8년 전이니 지금보다는 좀더 원시림이었고, 정말 쨍하게 맑았던 바다를 잊을 수 없다. 너무 맑고 밝아서 슬플 여유 따위는 없었다.

노을이 지던 서쪽 바다는 내 대신 모든 울음을 잔뜩 다 가진 듯했고 느리게 느리게 나와 슬픔을 나눴다. 이글이글 태워버릴 듯한 한낮의 태양은 생각 따윈 지워버리라고 말하는 듯했다. 억수같이 내리던 비와 날아갈 듯 불던 태풍 같은 바람도.

<그 바다, 그 언덕에서 난 내가 한 없이 약함을 인정했다.>

내 온몸으로 맞은 대자연의 섭리이자 숙명.

난 길가에 뿌리를 박은 나무보다 튼튼하지 않았고 쉼 없이 눕기를 반복하는 풀보다 유연하지 않았다. 바닷가 돌보다 단단하지 않았고 하얀 모래알보다 작지 않았다. 바위에 바짝 붙어 낮게 자라는 이름 모를 식물들, 광풍에 비바람에 작렬하는 태양에 숨 쉬고 기다리고 웃고 다시 자라는 그것들과 함께 있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들과 같고 싶었고 그들의 일부이고 싶었다. 나의 도보여행은 그렇게 다시 의미를 찾았고 떠남이 아닌 만남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4월이 봄꽃이 피기까지 5-6개월의 겨울이 있었고 봄꽃은 그 연한 꽃잎으로 아직 이른 찬바람을 맞는다.

자신들이 꽃이기에 피어나는 것인데 많은 이들이 그 아름다움에 미소를 머금는다. 희망을 품는다. 꽃처럼 피어나라. 꽃은 제가 꽃 인줄 모르고 피어나지 않더냐.

<그래 그 바다가 날 기다릴거야. 난 굳게 믿는다.>

꽃의 향연이 시작되는 5월이 되면 난 바다가 그립다.

그건 나의 추억이다. 바다 앓이 처럼 5월이 되면 향수병에 걸린 것 처럼 난 바다를 갈망하게 된다. 어느 코스도 아니고 어디도 아닌 난 그냥 바다가 그립다. 누군가가 그리운 것처럼 바다가 그립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 제주도가 있는 나라, 걷기 좋은 나라라 감사하기까지 하다.

5월의 어느 날 난 그리운 바다에 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다시 왔다고 잘 있었냐고 얘기할 것이다. 나 많이 보고 싶었느냐고. 나도 보고 싶었다고.

 

*본 기사는 월간 로드프레스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