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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계路] 뉴질랜드 3,000km의 트레일, 테아라로아를 걷다 ④ – 김혜림

크리스마스

같은 날들이 반복되던 익숙한 일상에서 매일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따뜻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고 크리스마스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건너편의 바다로 배를 타고 건너가 바다 길을 걷고 나면 마을이 나올 것이다. 그 마을에서 바닥난 식량을 채울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새벽에 평소보다 바쁘게 준비했다. 친구들보다 일찍 출발해서 황가레이 하버를 찍고 바다 건너편으로 데려다줄 배주인의 집 앞에서 제시간에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배를 타기로 한 장소>

서둘렀지만 크리스마스여서인지 들뜬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어제 자기 전에 텐트 옆에 걸어 놨던 양말한쪽은 홀쭉했다. 산타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크리스마스의 선물과 같은 하루가 되기를 바랬다.

빠른 걸음으로 뛰었다 걷다를 반복하며 황가레이 하버에 도착하니 궂은 날씨가 반겨주었고 헐레벌떡 뛰어가는 나를 감사히도 어부 아저씨가 친구들을 만나는 장소까지 차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태워주셨다. 

친구들은 배 주인 아저씨의 집안에서 따뜻한 차와 쿠키를 먹으며 편안한 휴식을 보내고 있었다. 

평생을 배에서 생활하셨던 아저씨는 한국에서 온 나를 반가워했다. 젋은시절 배를 타고 부산에서 생활 한 적이 있었다며, 자신의 가장 찬란했던 그때를 이야기 하는 아저씨의 얼굴엔 그때의 추억이 묻어났다. 40년 전 부산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지금의 부산을 본다면 그 변화를 어떻게 생각할지도 궁금했다. 

훗날 40년후가 되었을때 나도 뉴질랜드를 걸었던 날들을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을 것이다.

<배를 타고 사냐와 함께>

바다건너에는 긴 백사장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마치 테 아라로아를 처음 출발할 때 90마일 비치를 걷던 때가 연상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연휴여서인지 휴가를 바다로 온 가족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아쉬운대로 친구들과 캐롤을 함께 부르면서 크리스마스를 즐기려 했다.

우리나라 성수기때의 해변을 보는 듯 했다. 해변에서 뛰어 노는 사람들 사이를 배낭을 짊어진 우리가 지나 갈 때마다 수많은 시선이 집중되었다. 처음엔 부담스럽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지만 바다 길을 따라 걸으며 시선이 무뎌지는 시점이 오기도 했다.

<언덕위로 걷고 있다.>

평소보다 조금 길게 걸었던 날인 것 같다. 시계는 오늘 40km를 걸었다고 나타내고 있었다. 평지여서 평소보다 좀 더 길게 걸을 수 있었다.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길 건너 집에서 요리하는 냄새가 풍겨오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우리나라 설날이나 추석같은 명절이겠거니 생각하니 오늘 장을 좀 특별하게 봐서 맛있는거 해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집 앞마당에 텐트를 쳐놓아 아이들이 그 안에서 뛰어놀고 어른들은 고기를 굽는 집들이 많았다. 나도 그 안에 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멀리서 상점이 보이고 식당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걸음의 속도를 올렸다. 

하지만 다가갈수록 이상했다. 캐롤이 울리는 축제의 분위기 일 것이란 상상과는 달리 모든 상점이 문을 굳게 닫고 거리에는 사람도 없어 유령도시 같았다. 실망을 하기도 전에 걱정이 앞섰다. 식량이 떨어져 이곳에서 재보급을 하려던 계획이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걸어야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일단 배낭을 내려놓고 세라는 짐을 지키고 나와 사냐가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정말 하나같이 문을 다 닫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멀리서 인도 사람들이 운영하는, 우리나라로 치면 슈퍼와 같은 데어리 (Dairy)가 불이 켜져있었다. 

안도하는 동시에 신이 나서 달려가 데어리 안을 빙빙 돌았다. 가장 먹고 싶던 아이스크림을 먼저 고르고 앞으로 걸어갈 거리를 계산한 식량과 행동식을 사고 오늘 먹을 특식과 함께 두 손 무겁게 오늘의 캠프사이트로 향했다.

따뜻한 샤워와 함께 그간의 고단함이 씻겨 내려갔다. 그리고 풍족한 식량은 오늘이 크리스마스임을 느끼게 해줬다. 처음으로 느껴본 무덥고 따뜻한 크리스마스였다.

인종차별

크리스마스이후 망가웨이 헤드에서 사냐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그는 방학이 되어 사냐와 함께 걷기 위해 독일에서 뉴질랜드까지 우리를 찾아와 만난것이다. 

사냐와 세라 자매는 남자친구와 함께 하루 먼저 출발했고 나는 바트와 함게 걷게 되었다. 그때 현지 한인 커뮤니티에 여행기를 인터뷰를 통해 연재하고 있어 기자님게서 방문 하셨다. 그리고 교민인 기자님의 아들 둘과 하루를 같이 걷기로 하였다. 

<바트를 인터뷰하는 기자님>

오랜만에 쓰는 한국말이 너무 편했다. 말을 하고 싶을때 생각을 안 거치고 뱉을수 있다는게 이렇게 즐거운 것인지 몰랐다. 한국어를 하는 지금이 행복했다.

해외에서 간혹 인종차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영미권에서 살았던 연예인들의 방송을 보면서 어린시절 힘들었던 경험을 말하던 것을 보며 안타깝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도 이번 여행을 시작할 때 약간의 걱정을 하긴 했지만 뉴질랜드는 비교적 차별이 적다는 이야기와 ‘나의 태도가 자신감있고 당당하게 언행을 한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친구의 조언이 있었다. 그래서 부끄러움 많은 소극적인 동양인으로 보이지 않게 의도적인 노력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때까지 실제로 차별을 느껴본적도 없었다.

바트와 기자분의 아들 두 명, 이렇게 넷이서 함께 걷다가 걸음이 빠른 바트는 앞서가다 시야에서 사라졌다. 낡은 차에 가득 탄 키위(뉴질랜드 현지인들을 부르는 말)남자애들이 걷는 우리를 한번 지나쳤다. 이후 그 차는 다시 나타났다. 그러더니 그 녀석들을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며 우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겟 아웃 XX”

나의 귀를 의심했다. 그래서 같이 걷던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제대로 들은게 맞았고 화가났다.

여태 유럽친구들과 걸을 때에는 한번도 없던 일이 한국인인 우리끼리 길을 걸으니 이런일이 생겼다는 것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밀려왔다. 그리고 억울했다. 단지 동양인이라서 겪는 차별인것인가?

동시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외딴 곳에서 무방비로 놓여진 우리가 누군가의 표적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에 이민을 와서 지금까지 살아오며 어렸을 때 이미 이런 경험을 해봤다는 그 친구들은 대수롭지 않아 했다. 그냥 무시하면 된다며…

<망가웨이 헤드를 향해 걸으며>

이방인이었던 그 친구들은 그렇게 그곳에서 이런 일들을 겪으며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는지를 떠올리니 마음이 아팠다. 타지에서 이미 정착하고 살아가는 교민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질랜드가 비교적 차별이 덜하다는 곳이고, 지금 이곳이 시골이기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 하지만 여러 가지 감정이 몰아치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

그래서 ‘마오리 원주민이 살 던 이 섬에 들어온 너희가 나가라!’고 속으로 외쳤다.

심난한 마음으로 걸었다. 도로가 나뉘어 지는 곳에 식당들이 보였다. 그리고 교민 친구는 이곳에서는 피시앤 칩스가 맛있다며 두 봉지를 사들고 나타났다.

처음으로 먹어보는 피시앤칩스를 먹으며 안 좋은 기억을 다 지우려 노력했다.

“에잇.”

우리나라에서도 분명 차별이 있다. 

오히려 이보다 더 심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차별을 겪고 있을 우리나라에서 근로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내가 느꼈던 모멸감과 두려움보다 더 크게 느꼈을 것 같다. 그들의 마음의 일부이지만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었다.

혹시 나는 어땠는가, 무의식중에 차별을 한 적이 있었는지 경계해야겠다.

 

매직 버스

열심히 걸어왔다. 2016년의 마지막 날.

오늘, 내일부터 부지런히 걸어야 사냐와 세라, 그리고 사냐의 남자친구 스테판을 다시 만날 수 있다. 
또 그곳에서 다른 하이커들과 함께 카약킹을 하고 내려가야 하기에 걸음을 재촉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고 하늘이 어둑어둑 해지니 이제 오늘 하루를 마감할 곳을 찾아야한다. 트레일을 걸으며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DOME으로 향하는 바트>

그런데 테 아라로아 앱에 표시된 캠핑이 가능할 것 같다는 곳 들은 길가의 작은 공간에 불과했다. 텐트 두동을 다 못 칠 것 같았다. 

시간이 늦어져 나는 일단 여기라도 그냥 치는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지만 바트는 사람들 눈에 띌 가능성이 있는 곳은 절대 싫다고 했다. 바트는 앞서 걸으며 캠프사이트를 찾았다.

그러더니 길에서 살짝 옆으로 빠지니 공터가 나오고 큰 버스 한 대가 서있었다. 

버스는 검게 칠해져있었고 바퀴에는 비닐로 쌓여있었고 몇몇 곳엔 한자가 써있었다. 운행하는 버스같지는 않았다. 캠핑카를 만드려 개조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앞의 전망 좋은 터가 아주 캠핑하기 좋은 캠프사이트였다. 

<매직버스 앞에 텐트 두 동>

나는 그냥 조용히 이 마당에 텐트를 치고 내일 일찍 떠나자 했지만. 바트는 저 멀리 있는 집에 허락을 맡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쪽으로 걸어가려 했는데 어떤 젊은 여자 한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한 여자는 이 버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고 건너에 있는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에서 우리를 보고 온 것이라 했다. 자신의 버스를 열어주며 이곳에서 샤워를 하고 사용해도 좋다고 했다.

자신의 집을 이렇게 생판 처음 보는 남에게 맡기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우리를 믿고 배려해준 그녀가 대단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너무나 고마웠다. 

버스 안에는 두명은 거뜬히 잘 수 있는 큰 침대와 샤워시설, 화장실, 싱크대까지 다 갖춰져 있었고 텔레비전과 잡지들이 있는 것을 보고 평소에 이곳에서 생활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지쳐갈 때 잘 곳도 못 찾고 헤매던 우리에게 마법처럼 나타났다고 해서 바트는 “매직버스”라고 불렀다. 

가장 감명깊게 본영화가 ‘인투더 와일드’라며 그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식량이 없이 위험한 상황에서 이런 매직 버스가 나타나 주인공을 살렸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지금 상황이 너무 신기하다며 아이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말끔해진 모습으로 각자 음식을 했다. 

바트는 네델란드에서 음식점 주방에서 일을 했으며 요리를 하는 것을 좋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음식도 남달랐다. 렌틸콩과 이런 저런 가루를 넣고, 생마늘을 썰어서 끓여 먹었다. 사실 내가 음식을 조금 더 건강하게 먹기 위해 시도했던 방법들이 바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이번엔 실패했는지 별로라며 표정을 찡그리는 바트에게 아껴놓은 끓인 한국라면을 한 젓가락 주니 무척 좋아했다. 정말 대단하다면서. 연신 감탄을 하는 바트에게 국물과 함께 더 나누어 주었다.

그 여자분이 마법처럼 배풀어준 호의 덕분에 그동안 흘렸던 땀과 진흙들을 씻어냈다. 그리고 안락한 버스 안에서 저녁을 먹으며 따뜻한 연말을 보내고 있었다.

이 길을 걸으며 나의 삶이 평범하지 않다는 생각이 간혹 들 때가 있었지만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며 아직 세상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고 보지 못 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들면서 테 아라로아의 남쪽이 더욱 더 궁금해졌다.

남반구의 섬나라에서 마법같이 나타난 이 버스에서 그렇게  나는 2017년을 맞이했다.

 

*본 기사는 월간 로드프레스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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