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 By

광고문의

고개를 넘어 펼쳐지는 마을의 풍경 – 진안고원길 1~7코스 ②

2.마령면과 백운면을 지나다.

<마령면사무소. 1코스의 종점이자 2코스의 시작이다.>

형남정을 지나쳐 걷다보면 마령면으로 들어서게 된다. 아침 일찍 출발했으면 얼추 점심 무렵에 떨어지므로 면사무소 주변의 식당들을 이용하여 식사를 할 수 있다. 슈퍼 등도 있으므로(작은 슈퍼도 있지만 농협 하나로마트도 있다.) 충분히 필요한 행동식이나 물, 음료수 등을 구매할 수 있어 든든한 보급요지가 된다.

팔팔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후 마령면사무소로 향한다. 1코스의 종점이자 2코스의 시작점인 곳이다. 다시 한적해지는 마을 풍경속을 거닌다. 어디를 보아도 너른 논밭 위로 멋진 산세가 펼쳐져 있다. 그 사이를 걷노라니 정말로 근심이 사라지는 듯 하다. 다른 어느 길과 비교해봐도 (각자 맛이 있겠지만) 이 진안고원길이 가지는 고즈넉함은 이런 마을의 풍경에서 나온다.

<참 아름다운 길이요, 아름다운 표식이다.>

동네 개들의 격렬한 항의(이자 간만에 하는 밥값)을 뒤로 하고 걷는 순간, 산 중턱즈음에 위치한 저수지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그 저수지 제방 위로 세워진 진안고원길 방향표지판 하나. 땅과 하늘이 맞닿은 곳에 세워진 듯한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이건, 정말 그림같은데.”

절로 탄성이 나온다. 수려한 풍경, 확 펼쳐진 산하도 멋지지만 둘레길을 걸으면서 이렇게나 표식 하나의 위치가 탄성을 자아내던 때가 있었던가. 가쁜 숨을 다스리고 사진으로 그 풍경을 남긴다. 계단을 오르면 용수율이 제법 되는 남악제가 펼쳐진다.

남악제를 지나 내려오며 원평지마을을 통과한다. 소박한 마을, 소박한 교회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만 영풍정에서 원평지 방향으로 도로를 지나 맞은 편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공사중이라 표식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나중에 진안고원길 사무실에도 문의를 하였더니 충분히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몇 번을 붙여서 안내를 해도 공사가 진행되면서 표식이 유실된다고 한다.)

시래기를 말리느라 한창인 방화마을을 지나 한참을 걸어 백운면으로 들어서면 다시금 약간 도로구간을 걷게 된다. 가다보면 ‘운교리 물레방아’가 있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들러보는 것이 좋다. 그 안의 거대한 물레방아와 당시 사용했던 정미소의 시설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백미 한 가마(80kg)당 4kg을 현물로 받는다는 도정요율표가 아직도 붙여져 있다.

<행사 1일차 캠핑지인 솔밭거리 야영장>

내동마을 방면으로 향하다보면 1일차 캠핑지인 솔밭거리 야영장을 지나게 된다. 진안고원길 자체가 이 야영장을 통과하게 되어있다. 낡은 사이트지만 제법 많은 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꽤 마음에 든다. 소나무의 운치와 앞의 계곡 풍경까지 어우러져 야영엔 그만이다 싶다. 수도도 있어 식수 및 용수 보급도 충분하다. 다만 단점은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데 행사 전에는 청소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정도.

숙박을 원한다면 인근의 내동마을 마을회관에서 숙박할 수 있다. 행사 취지를 이해해주시고 마을에 외지인들이 찾아와 묵고 가는것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이장님 덕택에 1일차의 숙박은 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솔밭거리를 지나서는 백운면사무소 소재지인 읍내를 향해 가게 된다. 직선거리로는 얼마 되지 않지만 고원길은 좀 더 논과 밭, 마을의 풍경을 따라서 돌아가게끔 안내하고 있다. 충분히 안내하는대로 진안의 풍경을 더 즐기면 좋다.

그렇게 백운면 읍내로 들어가는 길에 눈길을 끄는 바위가 하나 있다. 누가 보더라도 이 바위의 모양만으로 그 이름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원촌 거북바위>

이 원촌 거북바위는 당시 마을 사람들에게 흉년과 풍년을 가르는 지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농업용수를 쉽게 보장받기 전에는 이 바위가 물에 잠기는 것으로 흉년과 풍년을 점쳤다고 하니 그만큼이나 1년살이에 중요한 이정표가 된 바위이다. 어디 그 뿐이었을까, 신묘한 생김새 때문에 발복의 기도, 치성의 장소로도 쓰이지 않았겠는가.

거북바위를 사진으로 담은 후 백운면 읍내로 들어선다. 면사무소 소재지답게 식당과 슈퍼, 마트 등이 있으므로 한국고갯길 행사에 참여하는 참가자들은 2일차의 보급을 시작지점에서 마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꽤 위치가 절묘한 셈이다. 참고로 백운면사무소는 2코스의 종착지이자 3코스의 시작지점이다.

읍내를 통과하노라니 면사무소 맞은편에 붙여진 현수막이 눈에 띈다. 곧 있을 졸업식, 백운중학교의 졸업식을 축하하는 현수막이다. 졸업인원은 다섯 명이다.

농어촌의 인구 감소가 사회적으로 큰, 재앙에 가까운 일이라지만 면에 위치한 중학교의 졸업인원이 다섯명이라는 것은 정말 충격이다. 그러고보니 작년에 걸었던 진안고원길 14코스에서 만난 상전면사무소는 면사무소가 있는 읍내임에도 슈퍼 하나, 식당 하나 없어 고생했던 기억이 있는데 진안의 면 중 유일하고 초등학교가 없는 곳이라 한다. 초등학교가 없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없어질 것이다.

꽤나 우울한 마음을 품고 걷기를 이어간다.

<구신치를 넘다.>

윤기마을과 동산마을을 지나면 전북산림환경연구소에 다다르게 된다. 널찍하게 펼쳐진 백운면을 조망할 수 있는 풍경도 제공할 뿐 더러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연구소의 끝으로 난 길은 오래간만에 밟는 흙길이다. 그 푹신함 속에서 잠시 땀을 흘리면 상덕현 마을을 지나 구신치를 오르게 된다.

이 구신치는 백운면 덕현리와 성수면 구신리를 잇는 고개로 ‘덕고개’라고도 불리는 고개다. 몇 년전 김태일 팀장이 올랐을 때에는 고개의 흔적만 남고 차마 길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험해 큰 고생을 했다고 하는데 답사시에는 고개 아래엔 새로운 건물을 공사중이었고 흙길이지만 정비가 충분히 되어 있어 쉽게 오를 만 했다.

그래도 정비한 고갯길이란게 저토록 좁다. 저 좁은 길을 따라 백운면 사람들은 임실장이나 관촌장을 오갔다고 한다. 심지어 혼례가 있으면 신부를 태운 가마도 저 고개를 넘었다고 하니 백운, 성수 주민들의 땀이 그대로 녹아있는 고개인 셈이다.

서둘러 구신치를 내려와 원구신마을에 도달한다. 1코스, 2코스를 지나 3코스의 초반까지 약 30여 km를 걸은 행군이다. 원구신 마을에서 차를 주차해 놓은 진안고원길의 정인호 노선팀장을 만난다. 차에 가방을 싣고 숙소로 향한다. 하루의 노고가 밀려온다.


3. 임도를 걷는 맛, 이 또한 진안고원길의 맛이다.

이튿날, 아침 일찍 원구신 마을에 도착해 2일차의 여정을 이어가기로 한다.

이 마을에도 태조 이성계에 대한 전설이 내려온다. 왜구를 격퇴한 이성계가 개성으로 돌아가던 중 신하를 구했다 하여 그 지역을 구신(求臣)리라 칭했는데 그 구신리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 이 곳이라 원구신 마을로 칭한다고 한다.

<노래가 절로 나오는 평화로운 풍경>

원구신 마을을 지나 하염북, 상염북마을로 들어서는 농로는 맑은 물과 논, 산이 어우러진 너무나 평화로운 풍경을 자랑한다. 그 전원 속에서 걷는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저절로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가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저 산 이름이 뭔지 알아요?”

“잘 모르겠습니다.”

“블루릿지 마운틴.”

“그럼 이 개천은 뭡니까?”

“셰넌도어 리버.”

“여기는 어디입니까?”

“웨스트 버지니아.”

실 없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길을 이어간다. 조금 걸어가니 상염북 마을로 올라가는 도로 옆으로 갈치조림을 잘 한다는 식당 광고가 붙어있다. 그래, 웨스트 버지니아의 유명한 향토요리는 갈치조림이지. 매콤하고 칼칼한.

<임도의 정상에서 진안을 바라보다.>

상염북마을을 통과하면 약 5km 가량의 임도가 이어진다. 마치 작년 진안고원길의 2일차 코스인 12코스 ‘고개너머 동향길’의 10km에 이르는 임도를 그대로 빼어닮았다. 작년의 그 임도는 임도가 거진 끝나는 지점에서 휘어지는 커브길을 돌자 눈 앞에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졌었다. 이 임도는 중간 정도 되는 곳이 그렇게 탁 트인 전경을 선사하는 곳이다.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목을 축인다. 꼭 산의 정상에서만 이런 경치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둘레길의 구간에서도, 임도나 등산로의 중간에서도 우리는 고개만 돌리면 이렇게나 멋진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바라본다. 지도를 보아도 감은 오지 않지만 분명 내가 바라보는 풍경 어딘가일 것이다. 그 사이 산도 넘고 다리도 건너 걷고 또 걸어가야 할 길, 그 사이에서 만나는 다양한 풍경들에 가슴이 설레인다.

오르는 것 만큼 멋진 보상을 해 준 임도를 내려와 점촌마을을 지나면 또 다시 멋진 산길이 이어지고 곧이어 원외궁 마을을 지나 성수면사무소 소재지를 만난다. 면사부소 부근에는 식당이 몇 곳 있으니 이쪽에서 점심식사를 마치도록 한다. 이 성수면사무소에서 3코스는 끝나고 4코스가 이어진다. 성수면사무소의 좌측으로 산길로 이어진다.

<한참을 올라야 하는 계단>

반용재로 오르는 산길의 초입은 꽤나 숨을 내쉬게 만드는 계단으로 시작됀다. 하나, 둘… 세다가 포기한 계단의 수. 그렇게 이제 막 식사를 마친 몸에 다시금 소화를 부추긴다. 계단을 따라 오르다보면 다시 일반적인 산길을 만나게 되고 큰 높낮이 없이 조용한 산 속의 트레일을 걷게 된다.

트레일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잠시 도로를 따라 걷는다. 약 1km가 못 되는 거리를 걷다보면 다시 산을 따라 내려오는 길을 만나게 되고 그렇게 내려오다보면 섬진강이 걷는 이를 환영한다. 어제 섬진강의 발원지 안내가 되어있던 마이산을 지나 이제서야 본격적인 섬진강을 만나는 셈이다.

<섬진강과 우측의 반용마을>

이 섬진강을 배경으로 자리한 평화로운 마을은 반용마을이다. 답사 당시 대보름을 앞두고 있어서인가 마을 공터에는 커다란 달집이 세워져 있다. 전체적으로 옛 전통이 많이 남아있는 진안 지역이지만 그 중에서도 반용마을의 대보름 달집태우기는 유명한 편인 듯 하다. 마을 입구에서도, 성수면 인근에서도 반용마을 달집태우기 행사 현수막을 봤기 때문이다.

반용마을을 지나 반용교를 건너며 섬진강을 사진으로 담는다. 이 상류가 임실군과 순창군을 지나전남 곡성군, 구례군, 광양시와 경남 하동군을 통과한다. 전북천리길을 조사하며 만났던 그 강을 다시금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섬진강을 지나 발걸음은 점촌마을까지 꽤 긴 제방을 걷게 된다. 이 제방을 따라 걷는 길은 온전히 바람을 그대로 맞고 걷는 길이다. 바람이 이는 고원길에 걸맞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점촌마을은 마을입구에 위치한 공중화장실이 매우 깨끗해 이용하기 참 좋았다. 맞은편엔 마을 식당 및 카페 등도 있는데 답사중인 날은 마침 카페가 문을 닫아 이용할 수 없었다. 혹여 주말에 연다면 행사에 참여한 인원들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 되지 않을까 한다.

4. 오암마을을 향해

<진안고원길의 매력은 바로 이런 풍경일 것이다.>

점촌마을을 지나 오르는 길, 진안의 특산물인 인삼밭을 지나 잘 닦인 농로를 따라 산 기슭을 오른다. 땀이 짙게 베일무렵, 드디어 인삼밭 위로 올라서니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 그 구릉을 따라 자리한 길이 펼쳐진다. 그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쉴 겸 발걸음을 멈춘다.

왜 걷는가? 아니, 왜 진안고원길을 걷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이 길의 풍경을 보며 한낮의 노고를 잊는다. 고원은 고원이다. 하지만 이 고원은 참으로 둥글고 정겹다. 따스하다. 그래서 이 길을 걷는 이는 되도록 ‘경쟁’이나 ‘도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해본다. 우리가 이 길을 걸으며 만나는 풍경을 오롯하게 즐기기에도 아까운 시간이다. 그 마음의 용량을 최대한 비워내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꼭 길을 걷는 이는 순례자가 아니어도 좋다. 그저 ‘걷는 자’, 그것이면 충분하다.

황토밭을 지나 다시금 재를 넘어 내려오는 길, 발걸음은 행사의 2일차 숙박지인 성수체련공원을 지나친다.

<성수체련공원의 풍경. 체련공원 끝 공터가 캠핑장소이다.>

성수체련공원은 화장실과 수돗가 등이 있어 캠핑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 다만 인근에 슈퍼 등의 편의시설은 없다. 그래도 충분히 이전의 백운면사무소나 성수면사무소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다면 큰 불편함은 없을 것이다. 숙박을 선택한 이는 캠핑지에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 더 코스로 나아가면 만나는 ‘용좌권역 방문자센터’에서 숙박할 수 있다.

평상시에도 축구경기로 주민들이 이용하는 체련공원이기에 꽤 관리가 잘 되어 있어 만족스러운 캠핑지를 뒤로 하고 교각 밑을 지나 걸음을 이어간다.

<저 멀리 오암마을이 보인다.>

2일차 답사의 종착지이자 4코스의 종점인 오암마을을 향해 걷는다. 제방을 따라 길게 걸어가는 길, 옆에서는 하천공사가 한창이다.

점점 마을의 개 짖는 소리가 다가온다. 종착지가 얼마 안남았기에 조금은 더 지친 발에 힘을 내 본다. 서쪽으로 저물어가는 햇살에 농토가 조금씩 붉게 물들 무렵, 오암마을의 정자에 도착한다. 정인호 노선팀장을 기다리며 이틀째의 답사를 무사히 마친것에 서로를 위로한다.

 


댓글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