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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만 소금길 답사기 ⑦ – 대부해솔길 4코스 종점 ~ 경기창작센터

<도로를 따라 여정을 다시 시작한다.>

새로이 맞이하는 아침, 도로를 따라 여정을 시작한다. 이번 경기만 소금길 7구간은 대부해솔길 4코스의 종점이자 5코스 시점인 말부흥 마을에서 경기창작센터까지 걷는 약 11.4km 길이의 구간이다. 대부해솔길 5코스와 6코스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으며 말미에서는 잠시 대부해솔길과 떨어져 진행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난이도는 높지 않지만 후반부의 선감도 입구를 제외하면 구간 내에 간식 등이 보급 가능한 곳이 거의 전무하므로 반드시 간식 및 음료 등은 미리 준비해야 한다.

길의 시작과 함께 곧 만나게 되는 유리섬 펜션단지의 작은 슈퍼가 이번 구간의 유일한 마트라 봐도 된다.

<도로내 하수관 공사가 한창이다. 꽤 긴 구간을 조심히 걸어야 한다.>

지난 6구간의 일부구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도로길, 약 15~20여 분 정도 도로를 따라 걷게 되는데 별다른 인도나 갓길이 없는지라 상당히 위험한 편이다. 또한 마침 도로 내 하수관 공사가 한창이라 차선마저 줄어들어 1차선 내로 차량들이 오고간다.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렇게 도로를 걷다 오른쪽으로 마을로 접어든다.

<포도밭 따라 한적하게 걸어보자.>

<오른쪽 길을 따라 금당마을로 향한다.>

언덕을 따라 포도밭이 인상적인 마을을 지나 전원주택단지로 잘 조성된 금당마을로 향한다. 조금은 소박하고, 그래서 더욱 정겨웠던 대부도 마을의 풍경이 잘 조성된 전원주택단지로 변모하는 모습이 아쉽지만 결국 인간이 살면서 ‘발전’을 아니 할 수는 없는지라 이 또한 변화의 흐름 속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으로 생각한다.

TV 등에서나 보던 마당이 너른 전원주택들은 한결같이 여유있어 보인다. 그 와중에도 철이 철인지라 몇몇 집이 한데 모여 김장을 담그고 있는 풍경은 그래도 사람 사는 정은 어디 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원주택단지의 끝머리에서 좁은 방죽을 따라 다시 해변을 만난다.

<좁은 방죽길>

<대부도테마펜션시티를 지나 걷기 좋은 길이 이어진다.>

좁은 방죽을 지나 갯벌을 따라 걷는 길은 이 경기만 소금길 7구간 중에서 풍경적으로는 가장 기억에 남는 구간일 것이다. 드넓게 펼쳐져 있는 갯벌을 따라, 그리고 염전을 따라 모든것을 내려놓고 그저 하염없이 걷기에 빠져들 수 있는 구간이다.

요즘 ‘불멍(캠핑을 하며 모닥불을 멍하니 바라보며 아무것도 안 하는 행위)’이 유행이라던데 이 구간은 ‘걸멍’이 가능한 구간이다. 아무런 잡념없이 그저 묵묵히 걷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를 통해 숨가쁘게, 정신없이 지내왔던 자신을 내려놓는다. 

깊게 패인 갯골은 수십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동안 물줄기가 만들어낸 자욱이리라. 이 넓은 갯벌이 가진 유구한 시간의 흐름과 그 속의 이야기에 비추어볼때 내가 가진 고민과 걱정, 불안은 얼마나 작디작은 것이겠는가.

<선답자(?)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재미도 있다.>

<이 시기에는 소금꽃을 볼 수 없지만 아직 염전은 살아숨쉬고 있다.>

마치 순천만의 구부정한 S자의 습곡처럼 길게 이어져 있는 갯벌을 우측에 두고 걷는 이 맛, 좌측은 끝도 없이 넓게 펼쳐진 염전이다. 11월도 끝을 향하는 초겨울이라 소금꽃 가득한 염전의 모습을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아직 꾸준하게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이라고 한다.

그 염전에 드리운 기나긴 휴식의 자욱을 따라 나 역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얼마전 열린 대부해솔길 걷기행사의 리본이 혼란을 준다. 안내판을 따라가자.>

<지붕처럼 아늑하게 햇살과 바람을 막아주는 소나무 아래에서 쉰다.>

적당히 쉴 곳을 찾을때까지 걷기로 한다. 가만히 걷다보니 화살표 이정표와 다르게 염전 사잇길로 리본이 달려있다. 대부해솔길 정식 리본이다.

앱을 열어 경기만 소금길과 대부해솔길 5코스의 경로를 확인해본다. 이상없이 표지판을 따라 동주염전과 대선방조제로 향하게 되어있다. 이 리본은 뭘까?

잠시 생각해보니 얼마 전 열린 대부해솔길 걷기축제에서 쓰인 임시 행사용 코스의 리본 표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사가 끝나면 바로 수거해야 이후 걷는 이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을텐데 후처리의 미숙함이 안타깝다.

방죽 한가운데 보기에도 아름다운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 나뭇가지가 마치 집의 지붕처럼 비스듬하게 지면을 향해 뻗고 있다. 촘촘한 소나무잎이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준다. 천연 휴게소나 다름없다.

잠시 나무 밑에서 쉰다. 뒤를 돌아보니 얼마나 걸어왔는지 제방 끝이 아른하다.

<동주염전을 만나다.>

<염업과 전통 소금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주는 안내판들>

제방이 끝나고 잠시 포도밭 언덕을 넘어 내려와 동주염전을 만난다. 염전체험으로도 유명한 이 곳은 아직까지 염업이 이루어지는 얼마 안 남은 경기만의 염전 중 한 곳으로 특히 “깸파리 소금”으로 유명하다.

깸파리는 깨진 옹기조각을 부르는 순 우리말로, 동주염전은 이 깸파리를 갯벌위에 깔아 소금을 만드는 방식을 50여 년동안 고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중금속이 걸러지고 미네랄이 축적된다고 하니 장인의 지혜가 이렇게나 과학적이다. 

소금과 염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은 안내판들을 보며 그저 지나쳤다면 평생 몰랐을 지식을 얻고 간다.

<시래기를 지키기 위해 맹렬히 짖는 개>

동주염전을 지나 약간의 오르막을 따라 임도를 걷게 된다. 잘 포장된 임도라 큰 어려움이 없다. 

마을에 위치한 펜션 몇을 지나 좀 더 숲으로 들어오면 만나는 대부해솔캠핑장. 캠핑장 앞의 개는 낯선 이의 출현에 격렬히 반응한다. 왜 이렇게 화를 낼까 싶어 보니 개 집 앞,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어놓은 무청(시래기)가 눈에 띈다. 설마 저것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충직스러운 행동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잔뜩 화가 난 녀석을 뒤로하고 대부해솔캠핑장을 통과한다. 언덕을 내려와서는 갯벌을 따라 선감도를 잇는 대선방조제를 타게 된다.

<우측의 선감도와 선감도를 잇는 대선방조제가 보인다.>

<대선방조제 위를 걷다.>

대선방조제에 올라서니 맞은편 도로 건너에 리본이 보인다. 이정표를 잘 보니 대부해솔길 7-1코스 이정표로 경기만 소금길에 속한 구간은 아니다. 헷갈리지 말고 경로를 따라 대선방조제를 지나면 선감도 입구에 도착한다.

선감도 입구는대부해솔길의 5코스의 종착지이자 6코스 시작점이다. 아직 경기만 소금길 7구간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7구간을 상징하는 지역 “선감도”는 이제 시작이다.

<선감도 입구의 식당가. 이번 구간 중 유일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선감도 입구의 식당가를 지난다. 마침 몹시도 시장하여 식사할 곳을 찾은지 오래였다. 횟집들인지라 혼자 식사가 가능할까 보노라니 한 식당의 사장님이 문을 열고 얼른 들어오라 하신다. 

몸을 녹이며 낙지비빔밥으로 원기를 회복한다. 

이 경기만 소금길 7구간은 시작지점의 유리섬 부근에 슈퍼가 한 곳, 그리고 식사가 가능한 식당은 이 선감도 입구의 식당촌 한 곳 뿐이다. 이를 놓치면 꽤나 힘든 여정이 될 것이니 반드시 기억하는 것이 좋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잠시 앉아 쉬어간다.

이 선감도는 현재는 방조제로 연결되어 이제는 섬이 아니다. 그래도 이 작은 섬이 7구간을 넘어서 경기만 소금길 전체에서도 큰 의미를 차지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선감학원’ 때문이다.

아직도 그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을 외면치 말라는 외침이 계속되고 있다. 발걸음은 식당촌을 떠나 선감옛길로 향하게 된다.

<그 옛날 선감학원의 건물들은 지금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옛 축사로 쓰인 건물은 현재는 교회로 쓰인다.>

<뒷 편의 건물이 현재 교회로 쓰이는 건물>

<선감 약수터. 이 물을 길어 몇번이고 오갔을 당시의 소년들을 떠올린다.>

선감옛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는 ‘부랑아 갱생과 교육’이라는 명분하에 1942년 8월부터 광복 이전까지 8세에서 18세의 소년들을 강제로 잡아 선감도에 가두니 이 시설이 선감학원이다. 잡혀온 소년들은 ‘갱생과 교육’과는 거리가 먼, 혹독한 노동과 인권유린, 학대에 놓이게 된다.  

광복을 맞이한 후에 폐원된 선감학원은 한국전쟁과 생활난으로 넘쳐나는 부랑아를 수용한다는 목적으로 1954년에 다시 개원하지만 일제강점기 당시의 제국주의 군대문화를 답습한 혹독한 악습과 부족한 지원, 강제된 노동과 이로인한 기본적인 교육권과 휴식권을 비롯한 인권의 박탈은 계속된다.  

수많은 소년들이 탈출을 감행하다 목숨을 잃었으며 그 외에도 비인간적인 대우와 폭행, 미비한 의료시설 등으로 그 짧은 삶을 미처 피우지 못한 채 차가운 땅에 잠들었다.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는 그 흔적을 짚어가며 걷는 걸음은 아프다는 말로 표현이 안 된다. 경기만 소금길은 이렇듯 다크투어리즘의 체험이 가능한 곳으로 시대의 아픔까지 온전히 담고 있다.

<대부해솔길과 경기만 소금길의 분기점>

선감옛길을 따라 축사와 양잠실이 있던 자리를 지나면 컨테이너를 기준으로 좌로는 대부해솔길 6코스, 우로는 경기만 소금길 7구간으로 나뉘는 길이 나온다. 어느 쪽으로 가도 경기창작센터를 만나지만 반드시 우측으로 가야한다. 

바로 선감역사박물관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참상과 증언, 자료를 모아놓은 선감역사박물관은 이번 코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선감역사박물관의 모습>

<박물관 내부. 당시 언론에 소개되었던 자료들과 사진, 영상 및 각종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끌려온 소년들은 내선교육을 받으며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해방후에 다시 문을 연 선감학원. 그 곳에 인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작은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박물관인 선감역사박물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옛 뉴스나 선전영상 등에 기록된 당시 선감학원 관련 영상이 흘러나온다. 팜플렛과 소책자 등을 챙겨들고 2층으로 올라간다.

최초 일제 강점기 시절 문을 연 선감학원, 그 이사장의 아들인 이하라 히로미츠는 자신과 비슷하거나 나이가 많은 조선의 소년들이 학대당하고 고통받아야 했던 것을 지켜보며 자랐다. 그래서 그는 귀국 후 성인이 되어서도 그 때의 기억을 항상 떠올렸고 <아! 선감도>라는 소설을 통해 1990년대초에 그 진실을 알린다. 지금도 매년 추모제때 한국을 밟는 그는 죽어서 선감도에 묻어달라 할 정도로 당시의 3년을 (비록 어린 아이였지만) 그저 지켜봐야 했던 자신을 속죄하고 있다.

하지만 1954년 이후 재개장한 선감학원은 경기도의 승인과 관리하에 36년의 세월을 더욱 비참하게 이어갔다. 

<유골 발굴 중 출토된 꽃신>

2층에 전시된 유물 중 눈길을 끄는 것은 꽃신이다. 당시 쌍둥이 형제였던 허일동, 허이동 소년은 모질고 궁핍한 이 곳의 삶에 시달렸고 끝내 형인 허일동 소년은 영양실조로 죽고만다. (당시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생존자인 강준희씨(67세)의 기억에 의하면 죽을 때 모포를 입에 물고 있었다고 한다. 아직도 강준희씨는 그 소년의 시신이 아픔을 참느라 물었는지 너무 배가고파 그것이라도 물었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유해를 광목에 싸서 앞산에 묻을 때, 아마 입소 당시 신고왔을 그 신발을 함께 묻어줬다고 한다. 

이후 선감학원의 진실이 알려지고 발굴이 시작되며 뼛조각과 함께 그 꽃신이 다시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신을 바라봐야 했던, 지금까지 살아있는 쌍둥이 동생인 허일용(허이동에서 개명)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 상처가 쌓이고 쌓인 이 박물관, 반드시 들러보아야 할 곳이다.

참고로 박물관 관람은 화, 목, 토요일 10시부터 17시까지 가능하며 선감학원 생존자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사전예약 : 010-5286-1150

<경기창작센터에 다다른다.>

<옛 선감학원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경기창작센터>

드디어 경기만 소금길 7구간의 종착지인 경기창작센터에 닿는다.

이 경기창작센터는 옛 선감학원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시설로, 1982년 당시 선감학원 건물을 허물고 직업기술학교로 새로이 세웠던 건물로 지금은 국내최대의 예술레지던시로 새롭게 탄생했다.

알록달록하게 채색된 총 4개동, 36개의 스튜디오에서 시각예술, 공연, 음악, 문학,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자신의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다.

개방된 스튜디오 및 전시공간에서 작품들을 잠시 둘러보며 지친 다리를 쉬어간다. 

맑았던 하늘은 어느샌가 눈이 당장이라도 내릴 것 처럼 잔뜩 흐리다. 그리고 그 아픈 길을 더듬은 내 마음도 흐리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 기나긴 소금길이 담은 이야기가 어찌 아름답기만 하겠는가.

걷는 이로서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못내 선감옛길에 자꾸 눈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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